인간보다 더 똑똑한 생성형 AI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제 2의 실존주의를 찾아야 한다
이전 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.
인간보다 더 똑똑해 보이는 생성형 AI가 범람하는 시대에,
우리는 다시 한 번 ‘어떻게 살아야 하는가’라는 질문을 꺼내야 한다고.
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연장선의 사유다.
기술 이야기를 조금 하되, 기술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.
알베르 카뮈의 『시지프스 신화』
알베르 카뮈는 『시지프스 신화』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.
“삶은 과연 살 가치가 있는가?”
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는
끝없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.
바위는 항상 정상에서 굴러 떨어지고,
그 행위는 영원히 반복된다.
카뮈는 말한다.
이 행위 자체는 부조리하지만,
그 부조리를 인식한 채 바위를 미는 순간
시지프스는 패배자가 아니라 의식적인 존재가 된다고.
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.
바위가 정상에 머무느냐가 아니라,
그걸 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다.
이 장면은 지금의 인간과 AI의 관계를 너무 닮아 있다.
과도한 기술 담론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
요즘 AI 시장을 보면 이런 말들이 넘쳐난다.
- “이제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미래다”
- “이 질문 방식만 알면 누구나 전문가가 된다”
- “AI를 잘 쓰는 법을 모르면 뒤처진다”
하지만 냉정하게 말해보자.
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새로운 사고방식이 아니다.
그건 인간이 원래 하던 사고를
마치 대단한 기술인 것처럼 포장한 마케팅에 가깝다.
- 맥락을 설명하고
- 조건을 명확히 하고
- 원하는 결과를 구체화하는 것
이건 원래 인간의 사고 과정이다.
보고서를 쓰든, 사람에게 일을 시키든,
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 왔다.
AI 기술은 새로울 수 있지만,
사고 자체는 새롭지 않다.
흔들릴 필요가 없다.
결국 AI는 인간의 사고를 따라가는 도구다
많은 사람들이 AI를 마치
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처럼 오해한다.
하지만 실제로 AI는 이렇다.
- 인간이 던진 질문의 틀 안에서만 반응하고
- 인간이 제공한 맥락만큼만 이해하며
- 인간이 설정한 기준만큼만 그럴듯하게 답한다
AI는 사고하지 않는다.
사고의 흔적을 통계적으로 재현할 뿐이다.
그래서 AI와의 대화는
AI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
나 자신의 사고를 외부로 꺼내는 과정에 가깝다.
정확히 지적하지 않으면 AI는 사람보다 못하다
이건 써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.
- 문제를 대충 던지면 결과도 대충 나온다
- 조건을 빼먹으면 엉뚱한 답을 준다
- 맥락을 흐리면 말은 그럴듯하지만 쓸모는 없다
AI는 눈치가 없다.
사람처럼 의도를 추론해 주지 않는다.
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,
AI를 쓰려면 오히려 인간이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.
-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
-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설명하고
- 무엇이 좋은 답인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
그걸 못 하면,
AI는 숙련된 사람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낸다.
우리는 AI에게 정확히 지시하기 위해 구조화 연습을 해야 한다
AI 시대의 핵심 역량은
새로운 기술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.
문제를 구조화하는 능력이다.
- 현상을 나누고
- 원인을 분리하고
- 제약조건을 정리하고
-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
이건 AI를 위해서라기보다,
인간 자신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다.
AI는 구조화된 사고를 증폭시키는 도구일 뿐,
그걸 대신 만들어주지는 않는다.
구조화 연습의 핵심은 메타인지다
구조화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.
- 나는 지금 무엇을 모르는가
- 이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
- 내가 놓치고 있는 전제는 무엇인가
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.
즉,
생각하는 나 자신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능력,
메타인지를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.
AI는 그 과정을 빠르게 도와줄 수는 있지만,
그 질문을 대신 던져주지는 않는다.
결론 - 제2의 실존주의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
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.
- 질문하는 주체는 인간이고
- 선택의 책임을 지는 것도 인간이며
- 그 선택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인간이다
카뮈는 말했다.
“시지프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상상해야 한다”고.
AI 시대의 인간도 마찬가지다.
도구가 아무리 강력해져도,
의식적으로 바위를 미는 존재로 남는 한
인간은 결코 밀려나지 않는다.
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
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,
흔들리지 않는 사고의 중심,
그리고
제2의 실존주의적 태도다.